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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연탄·급식 절반 끊겨…작년보다 더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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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길사   조회Hit 893   작성일20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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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까지 겹쳐 기업후원 크게 줄어. . .

사랑의 온도탑 6.7도

"등유 5통 아끼고 아껴 혹한기 한달 버텨"…힘겨운 겨울나기

  • 유준호,박재영 기자

 

■ 崔게이트 여파로 기부문화 위축…영등포 쪽방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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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5일 서울 영등포역파출소 뒤편 쪽방촌 골목길. 최순실 사태의 여파로 이곳을 찾는 온정의 손길이 줄어들어 더욱 쓸쓸해 보인다. [김재훈 기자]
한국 사회 전반에 기부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공익재단' 이미지가 크게 악화된 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여파로 기업들의 후원금마저 확 줄었기 때문이다. 5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사랑의 온도탑'은 6.7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16도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지난달 중순부터 현재까지 모금액이 241억원으로 올해 목표액 3588억원 대비 6.7%밖에 안 된다.

"내일은 또 영하로 떨어진다는데 전기료 무서워서 전기장판·온열기도 마음대로 못 틀겠고…."

서울 영등포역 6번 출구. 대형 백화점 한 귀퉁이를 왼쪽으로 돌아 외길로 들어서면 대규모 쇼핑몰이 몰려 있는 주변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5일 오후 골목을 따라 영등포 역전파출소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노숙인들이 박스를 하나씩 깔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짧은 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은 동상이 걸린 듯 검게 변해 있었다.

파출소 뒤편에 자리 잡은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의 얼굴에는 올해 겨울도 혹독할 것이라는 근심이 역력했다. 좁은 골목길 한쪽 슬레이트 지붕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으로 쪽방 5개가 다시 나왔다. 팔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이 쪽방에는 두꺼운 겨울 이불과 전기장판이 난방을 대신하고 있었다.

건물 전체 난방을 위한 기름보일러가 있지만 어지간히 춥지 않고서는 틀지 않는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60대 조 모씨는 "연탄도 그렇지만 난방용 기름은 거의 지원이 안 된다"며 "지원받는 등유 5통을 아끼고 아껴 써야 겨울 한 달 정도를 겨우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노숙자들과 쪽방촌 사람들이 하루 중 '온기'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은 역전파출소 뒤편에 마련된 무료 급식소가 유일하다. 하루 이곳을 찾는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은 600여 명.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 전체를 덮친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무료 급식소나 이곳을 찾던 도움의 손길이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김 모씨(43)는 "예전에는 연탄이나 쌀 등을 배달하는 복지단체 사람들이 일주일에 2번 이상 다녀가기도 했다"며 "요즘은 우리 빼곤 통 보기 힘들어졌는데 무료 급식마저 절반 수준으로 '뚝' 감소해 이곳 겨울 나기가 여간 걱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불우한 이웃에게 쏠리던 사회적 관심이 최순실 사건과 촛불집회 쪽으로 나뉘면서 상대적으로 기부에 대한 관심이 소원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인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에 따르면 재단이 운영 중인 경기 지역 연탄은행의 보관 창고는 텅 빈 실정이다. 전국 31곳 연탄은행 중 경기도 내 연탄은행은 연천·동두천·남양주·여주 연탄은행 등 4곳이며, 올해 들어 이들 연탄은행은 기업체 등으로부터 경제적 후원이 사실상 끊겼거나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전 같으면 일주일에 3~4번씩 연탄 배달을 나갈 정도였는데 올해는 많아야 1~2번 배달로 그치고 있다는 것. 특히 전체 연탄 후원의 70% 정도를 차지했던 공공기관과 기업 참여가 줄었다.

허기복 밥상공동체복지재단 대표는 "작년 10~11월 후원액이 연탄 150만장 정도 되는데 청탁금지법 시행에 이어 최순실 사태 여파까지 겹치면서 올해는 96만장 정도에 그쳐 전년 대비 36%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 대표는 "다행히 한국전력이 최근 200만장 정도 후원했지만 이달이 사실상 마지막 연탄 후원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100만장 이상 모자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낳은 폐해는 쪽방촌 '한파'만이 아니다. 공익재단을 장사 또는 편법으로 보는 불신이 확산되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사기마저 '뚝' 떨어뜨리고 있다.

쪽방촌 생활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들' 정병창 사무부장은 "우리는 한 푼이라도 보조금을 잘못 쓰게 되면 한바탕 난리가 난다"면서 "실체도 없는 문화재단에 수백억 원씩 새나갔다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상당한 박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 사무부장은 "여기에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 하위 0.01%에 해당하는 정말 열악한 분들"이라며 "복지가 만능은 아니지만 세금을 제대로 써서 골고루 잘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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