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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 [주간인물 2015.4.7.김명혁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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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길사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11회   작성일Date 15-03-2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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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

 

 




현재 김명혁 목사는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등을 맡으며 한국 기독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은퇴 후 지난 7년 동안 매주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고 외국의 선교지도로 자주 방문하면서 사랑과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앞으로도 주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즐겁고 기쁘게 전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는 김명혁 회장의 나그네 인생을 주간인물이 들여다보았다. _신진수 기자

 

한국복음주의협회 김명혁 회장:
“신앙이 중심이 되었던 그의 나그네 인생”

 

태어날 때부터 김 회장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기질과 성격을 가지며 즐겁게 살아왔다. 때문에 ‘장난꾸러기’ 혹은 ‘막가파’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막가파’는 그의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얌전한 대신 활발했으며 성격 역시 시원했다. 한 예로 어린 시절 신의주에서 그는 친구들을 데리고 중국인의 토마토 밭을 헤집으며 서리하기를 여러 번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길거리에 구멍을 파고 그 위에 종이와 흙을 덮어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그 길을 지나가다 빠지기 일쑤였고 이에 김 회장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김 회장은 동네의 유명한 장난꾸러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김 회장의 신앙심이었다. 신의주에 있을 때나 평양에 있을 때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감옥에 자주 잡혀가시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주일 성수와 순교 신앙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그는 10살 때 평양으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받아 주일 성수와 순교신앙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고 말한다. “평양은 최봉석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 등 여러 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입니다. 나 또한 그분들과 아버지의 얼을 이어 받아 신앙 생활에 열중했습니다.” “일요일마다 학교에 오라고 했지만 나는 2년 동안 학교에 간 일은 한 번도 없었고 주일에는 종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서곤 했습니다.” 11살이 되던 해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단을 하게 된다.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1948년 8월 38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서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온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이었습니다.같이 오던 어른들은 모두 인민군들에게 붙잡혔지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믿음의 DNA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사랑의 DNA가 그 때부터 평생 나를 붙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1950년 6월 23일 경 평양에서 순교했다.


월남 후 그는 서울에 있는 친척과 함께 지내며 남한에서의 나그네 생활을 시작했다. 남한에 와서 그의 신앙 생활은 더욱 더 철저했다. 주일을 성수하며 새벽기도를 빠지는 일이 없었다. 순교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거의 모든 부흥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사모했고 기도생활에 더욱 더 힘을 썼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에 가서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이성봉 김치선 한경직 목사님들의 사랑과 가르침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단돈 100불을 가지고 1962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12년 동안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여러 좋은 학교에서 마음껏 공할 수가 있었다. 방학 때는 여라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생을 폭 넓게 배울 수도 있었다. 여러 학교에서 여러가지 학위를 받은 후 1974년 귀국하여 평생 목회와 교수 사역에 마음껏 종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그 다음에는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 그리고 마지막에는 강변교회에 29년 동안 목회사역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총신과 합신에서 교수 사역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선교 사역도 구제 사역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2008년 1월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7년 동안 순회 목회사역과 순회 선교사역을 계속해오고 있다.

사랑과 섬김으로 이어지는 진실된 선교 활동
 

김명혁 회장은 그 동안 목회 및 교수 사역과 함께 세계 곳곳을 찾아 다니면서 사랑과 섬김의 손길을 펴는 선교 사역에도 최선을 다해오고 있다. 그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섬김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사랑하라”(요13:34). 김명혁 회장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이기적인고 정욕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중의 죄인이지만 주님의 가르침과 신앙의 선배들의 ‘사랑과 섬김’의 사역을 흠모하고 본 받으면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려고 애를 써 오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1988년 여름 북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를 찾아가서 가뭄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 15개를 파주기도 했습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를 찾아가서 재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위해서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기도 했고 노재인이라는 영양사 한 사람을 방글라데시에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1995년부터 홍수와 재난으로 고통 당하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1999년경부터 불쌍한 연변의 조선족 고아 어린이들 160 여명을 돕는 일을 지난 14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가서 재난과 가난으로 고통 당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어주고 준공식을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0년 8월 27일에는 5개 종단 대표 9명과 함께 밀가루 300톤을 13대의 대형 트럭에 싣고 황해도 개성에 가서 그곳 민화협 대표들에게 전달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2014년 1월 13일부터 17일까지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를 방문하고 테러로 130여명의 생명을 잃고 170여명이 부상을 당한 역사적인 교회인 올 쎄인트 교회의 성도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바르고 착한 삶


김 회장은 “현재 한국 사회와 교회는 정치, 경제, 문화적인 흐름과 가치관에 집착해서 가난하고 병든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를 주저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순수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세속적인 유행과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라며 씁쓸함을 지었다. 그는 대중들을 위한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우선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해요. 가장 귀중한 것은 바르게 살며 착하게 사는 것입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살고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의 유익과 기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기쁨을 구하며 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손해를 볼 수 도 있지만 착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착함에서 기쁨과 행복이 옵니다. 그리고 현세에 대한 집착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는 천국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진정한 종교인의 기품이 느껴졌다.   


프로필

現)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강변교회 원로 / 선교목사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이사 및 공동회장
    한국교회연합 명예회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前)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장

 

 

           신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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